浅雛文子
도쿄 음악 학교 본과(성악과) 1년생.
대일본 제국 해군 대장 아사히나 소타로의 무남독녀이자
제국 육군 소위 코이토 오토노신의 약혼녀.
흰 얼굴과 짧은 눈썹이 히나 인형을 연상시키는 흑발의 소녀로,
상냥하고 교양 있는 전형적인 야마토 나데시코.
아버지의 손님이었던 츠루미 중위가 들려주었던 피아노곡을 계기로 양음악의 매력에 빠졌다.
현재는 소프라노를 목표로 맹연습 중. 학교 입학 당시에도 성악 실력이 대단해 주목받았다.
그 외에도 피아노, 영어와 독일어에 능통하다.
음악이라는 적성을 발견할 수 있게 도와주고, 음악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가족들을 설득해 준 츠루미 중위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그를 신뢰할 만한 어른이라고 여기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코이토보다도 더 중위를 믿고 따르고 있다
규슈의 진수부 참모장이었던 아버지의 근무지 때문에 어린 시절을 가고시마에서 보냈다.
각자의 아버지끼리 친분이 있었던 코이토와는 어렸을 때부터 친했고,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점차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작중 시점에서는 겨울방학을 맞아 홋카이도에 와 있다.
7사단 본부 근처에 극장이 생겼으니 아사히카와에 와서 축하 공연을 해 달라는 중위의 부탁을 받았지만(이 또한 히나를 전쟁에 엮이게 만들어 소타로를 흔들기 위한 계략에 가깝다) 7사단 내부의 잡음과 금괴 사냥이 격화되어 공연이 무산되자 삿포로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츠루미의 진의를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한 코이토가 삿포로 맥주 공장에서 혈투를 벌인 다음 날, 우연히 거리에서 코이토와 마주치고 당장 도쿄로 돌아갈 것, 츠루미 중위와 너무 가까워지지는 말라는 충고를 듣는다.
도쿄로 돌아간 후에도 그 말의 의미를 곱씹으며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낸 모양.
음악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리릭 소프라노로서 왕성히 활동했다. 하코다테에서 돌아온 코이토가 육군대학교를 졸업할 때쯤 그와 결혼해 정착한다.
그간 쌓아 온 추억과 중위에게 가졌던 호감 때문에 츠루미를 인간적으로 동정했고, 그가 홋카이도 땅에 더 큰 살육과 전쟁을 불러오려 했다는 것까지는 알지 못한 채로 어른이 되었다.
이후 문화학원의 음악 교사로 살아가면서 여러 경험을 하고,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츠루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음악은 이념과 무관해야 한다는 뚜렷한 주관이 있다.
*
1850년경
코이토 오토노신의 아버지인 코이토 헤이지, 오가타 햐쿠노스케와 하나자와 유사쿠의 아버지인 하나자와 코지로 탄생
1855
9월 16일 - 아사히나 후미코의 아버지인 아사히나 소타로 탄생
1860
아이누 족이 사금을 하코다테 러시아 영사관에 숨김
1866
12월 25일 - 츠루미 토쿠시로 탄생
1872
8월 - 아사히나 소타로와 코이토 헤이지가 해군 병학 기숙사에 입교 (해군병학교 5기생)
1873
코이토 헤이노조 탄생
1878
8월 - 아사히나 소타로와 코이토 헤이지가 소위보로 임관
1881
3월 - 빌크와 율바르스가 러시아 황제를 암살
1885
아사히나 소타로가 중위로 승진
1886
아사히나 소타로가 대위로 승진
4월 21일 - 진수부 관제가 제정, 규슈의 사세보항에 제3 해군구 진수부를 두는 것이 결정
12월 23일 - 코이토 오토노신 탄생
1889
7월 1일 - 사세보 진수부 개청, 코이토 헤이지가 사세보 진수부로 발령
1890
1월 20일 - 아사히나 후미코 탄생
아사히나 대위가 요코스카 진수부 참모로 발령
1891
빌크, 율바르스, 소피아가 하세가와 코이치를 찾아옴, 이후 피나와 올리가가 사망
1893
츠루미 토쿠시로가 니가타 제 2사단에서 홋카이도 제 7사단으로 좌천
9월 - 아사히나 소타로가 해군 중추부 인사과장에 임명(~1897)
1894
7월 25일 - 청일전쟁 개전
9월 17일 - 황해 해전, 순양함 마쓰시마에 타고 있던 코이토 헤이노조 전사, 이 당시 코이토 헤이지는 중좌(중령)
1895
4월 17일 - 청일전쟁 종결
츠키시마 하지메가 부친을 살해
아사히나 소타로가 대좌(대령)으로 승진
1896
제 7사단이 삿포로에 배치
츠루미가 감옥의 츠키시마를 방문
1897
츠루미 토쿠시로와 츠키시마가 잠복 중 블라디보스토크로 여행
아사히나 소타로가 사세보 진수부 함장으로 발령, 이때부터 같은 규슈에 위치한 가고시마에 거주.
아사히나 후미코도 7세에 가고시마로 이주, 이 무렵 코이토 오토노신을 만남
1900
구제 중학생 코이토 오토노신이 츠루미 토쿠시로를 만남
1901
스기모토 사이치가 하나자와 유사쿠의 동정 사수 작전에 참여함
7월 - 아사히나 소타로가 소장으로 승진, 동시에 해군성 인사국장으로 임명
1902
아사히나 후미코가 도쿄로 이주, 짓센여학교에 입학
코이토 오토노신 납치 사건 발발 (이때의 코이토 헤이지는 대좌)
코이토 오토노신과 츠루미 토쿠시로가 재회
놋페라보가 아바시리 감옥에 수감됨
1903
츠루미 토쿠시로가 아사히나 소타로와 처음으로 접촉
스기모토 사이치가 제 1사단에 입대
아바시리 감옥에서 24명의 죄수가 탈출
1904
2월 8일 - 러일전쟁 개전
8월 1일 - 여순항 포위전, 제 1사단과 7사단이 참가
11월 26일~12월 6일 - 여순공위전 제 3회 총공격, 203고지 공략전
12월 - 코이토 오토노신이 육군사관학교에 입교(육사 제 18기)
1905
1월 - 일본군이 여순항을 점령, 여순구 진수부를 설치
- 아사히나 소타로가 중장으로 승진
2월 21일~3월 10일 - 봉천회전, 츠루미 토쿠시로의 전두엽이 날아감
5월 27일~5월 28일 - 쓰시마 해전, 아사히나 소타로의 왼눈이 날아감, 완전히 실명
9월 5일 - 러일전쟁 종결
11월 - 코이토 오토노신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7사단 보병 제 27연대에 견습사관으로 입대
1906
아사히나 후미코가 도쿄 음악 학교에 입학
아사히나 소타로가 여순구 진수부 사령장관에 임명
6월 - 코이토 오토노신이 소위로 임관
오가타 햐쿠노스케가 하나자와 코지로 중장 살해
11월 -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설립, 스기모토 사이치가 사금을 찾아 오타루로 떠남
1907
2월 - 원작 제 1화 시작
9월 - 아사히나 소타로가 남작 작위를 받음
1908
8월 - 아사히나 소타로가 여순을 떠나 해군 장관 회의 의원이 됨
1910
아사히나 후미코가 도쿄 음악 학교 성악과를 우등으로 졸업, 한카 쉘델프 페욜트에게 사사
1911
1월 - 아사히나 소타로가 마이즈루 진수부 사령장관에 임명
12월 12일 - 코이토 오토노신이 육군대학교 26기에 입학
1912
아사히나 후미코가 동교 연구과 성악부 수료
1913
아사히나 소타로가 대장 승진
아사히나 후미코가 독창회를 개최
1914
7월 28일 - 제 1차 세계대전 개전
11월 27일 - 코이토 오토노신이 육군대학교를 졸업 (육대 제 26기), 대위로 임관 후 보병 제 27연대 중대장으로 취임
코이토 오토노신과 아사히나 후미코가 결혼, 부부가 함께 홋카이도로 이주
12월 1일 - 아사히나 소타로가 은퇴
1915
12월 - 코이토 오토노신이 참모 본부로 발령, 도쿄로 이주
1918
코이토 오토노신이 소좌로 승진
11월 11일 - 제 1차 세계대전 종전
1921
아사히나 소타로 사망
1922
코이토 오토노신이 중좌로 진급
1924
코이토 후미코가 문화 학원의 교사로 취임
1926
코이토 오토노신이 대좌로 진급
1927
제 7사단 참모장 발령
코이토 후미코가 신교향악단 정기 연주회에서 말러의 가곡을 초연
1928
코이토 후미코가 독일에 유학
1930
코이토 오토노신이 소장으로 진급
1931
9월 18일 - 만주사변 발발
1932
2월 28일 - 만주사변 종결
1937
코이토 오토노신이 중장으로 진급
7월 7일 - 중일전쟁 발발
1941
코이토 오토노신 제 7사단장 취임
1951
코이토 후미코 사망
1962
코이토 오토노신 사망
*
1890년 1월 20일생, 153cm
시가현 히코네시 출신, 4살까지 비와 호 근처에 살았다.
히나마츠리 때 먹는 쌀과자(히나아라레)를 좋아하고 비와호큰메기를 싫어함
청일전쟁 이후 1897년, 사세보 진수부 함장으로 임명된 아버지를 따라 온 가족이 가고시마로 이사해 왔음
코이토 대좌와 절친한 학교 동기 사이인 아버지 덕분에 자연히 그 아들인 오토노신과 친해지게 되었지만
이미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한 오토노신을 후미코가 교화시켜주거나 보듬어줄 수는 없었음
코이토가 원했던 건 후미코의 사랑이 아닌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이니까
그래도 4살 아래의 후미코는 사춘기노신이 조금이라도 마음 붙일 수 있는 상대였기 때문에
각각 16살, 12살에 코이토가 하코다테로, 후미가 도쿄의 여학교로 갔을 때도 꾸준히 편지 왕래를 했었음
이 무렵에 코이토 납치 사건이 일어나고 코이토는 하코다테에서 츠루미를 만나게 됨
이 무렵에 코이토랑 후미코가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츠루미를 향한 코이토의 넘치는 사랑.....존경심....애정을 뼈저리게 읽어낼 수가 있고
츠루미가 아사히나 소장한테 접근하기 시작하면서 후미코도 본격적으로 츠루미를 존경하게 될 듯
사실 츠루미가 가져다준 피아노가 후미가 살면서 처음으로 접하게 된 서양 음악이고,
바로 그 피아노를 계기로 해서 성악이라는 세계에까지 발을 담그게 된 거라 더 츠루미에게 고마워하는듯
13살에 만난 피아노가 없었더라면 자기가 양음악이라는 분야에 재능이 있었는지도 몰랐을 테니까
심상 초등학교에다 여학교까지 나왔으면 됐지 뭘 더 배우겠다고 4년짜리 음악 학교에 가려고 하느냐는 아버지를 설득해준 것도 츠루미
더 넓은 세상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암튼 1902년 이후부터의 코이토는 상당히 싹수 바른 놈이 되어가고 있을 거니까
본격적인 혼담도 이 사이에 진행되면 좋겠음 아마도 육사 재학 중에 얘기가 오고 갔을 것 같다
코이토 대좌도 후미코를 마음에 들어 했었고
원래는 코이토를 끔찍하게 맘에 안 들어하던 아사히나 소장도 유괴사건 이후로는 오토노신을 꽤 높이 평가하게 될듯
그렇게 맺어진 혼담이 주우욱 가는 겁니다..죽을 때까지
*연표는 골든 카무이 위키 (https://goldenkamuy.fandom.com/wiki/Timeline) 참고했습니다:)